대만은 작은 섬나라지만, 여행자의 관점에서는 그 크기만큼이나 다양한 얼굴을 가지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타이베이 같은 대도시를 먼저 떠올리지만, 저는 이번 여행에서 그 반대편, 대만 동부를 선택했습니다. 목적지는 화롄(Hualien)과 타이동(Taitung). 도시의 화려함보다는 자연과 여유를 찾고 싶을 때, 이 두 지역은 탁월한 선택이었습니다.
1. 화롄
화롄은 그 자체로 자연을 품은 도시입니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보이는 초록빛 산맥과 멀리서 들려오는 바닷소리에, 도시에 지친 감정이 조금씩 풀리는 느낌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타이루거 협곡(太魯閣峽谷)은 대만 동부 여행의 백미라 할 수 있죠. 협곡 안에는 여러 개의 트레킹 코스가 있는데, 저는 ‘샤카당 트레일’을 걸었습니다. 계곡과 절벽 사이를 따라 걷는 이 길은, 위험하지 않으면서도 자연의 거대한 규모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코스였습니다. 중간중간에 멈춰서 바라보는 절벽의 결이나 강물의 흐름은 단순히 ‘풍경이 좋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했습니다. 또 하나, 치싱탄(七星潭) 해변은 도시에서는 쉽게 경험할 수 없는 분위기를 선사합니다. 이 해변은 모래 대신 자갈로 되어 있어, 걷는 내내 발밑에서 들리는 자잘한 돌소리가 색다른 정취를 줍니다. 특히 새벽녘 일출을 보러 갔던 기억은 지금도 선명합니다. 붉게 물드는 하늘 아래에서 파도 소리가 배경음이 되는 순간은 누구에게나 특별할 것입니다.
현지 문화와의 뜻밖의 만남
화롄은 단지 자연만 있는 지역은 아닙니다. 이곳은 대만 원주민 문화가 비교적 잘 보존된 지역이기도 합니다. 아미족, 타로코족 등 다양한 민족이 공존하며 살아가고 있고, 지역 축제나 전통 시장에서는 그들의 삶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습니다. 특히 주말에 열린 한 소규모 원주민 시장에서는 수공예품부터 전통 음식까지 다양한 볼거리와 먹거리가 있었습니다. 손으로 직접 엮은 나무 팔찌나, 고구마를 말린 간식 등은 여행 선물로도 손색이 없었습니다. 이런 작은 체험들이 오히려 여행의 기억을 더 선명하게 만들어 주는 법이죠.
2. 타이동
화롄에서 기차로 2시간가량 이동하면 타이동에 도착합니다. 타이동은 더욱 조용하고, 한적한 분위기가 인상적인 도시였습니다. 특히 루예 고원(鹿野高台)은 타이동을 대표하는 장소 중 하나입니다. 드넓은 초원 위로 펼쳐진 하늘, 그리고 그 위로 떠오르는 열기구들. 이곳에서는 매년 여름 국제 열기구 축제가 열리는데, 시기를 잘 맞추면 열기구를 타고 타이동의 자연을 한눈에 내려다보는 특별한 경험도 가능합니다. 이외에도 타이동에는 크고 작은 온천이 많습니다. 저는 진전 온천(金針溫泉)을 찾았는데, 물이 자극적이지 않고 부드러워 오랜 시간 몸을 담그기에 좋았습니다. 여행 중에 피로를 풀 수 있는 온천은 마치 보너스 같은 기분을 주죠. 타이동 시내에서 벗어나 외곽으로 향하면, 끝없이 펼쳐지는 논밭과 바다가 어우러진 전경이 나타납니다. 자동차가 많지 않은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오히려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느낌이 듭니다. 마을 곳곳에서 만나는 작은 농산물 가게나, 즉석에서 만든 로컬 음식도 여행의 소소한 즐거움 중 하나입니다.
자연과 함께하는 여행, 그 진짜 의미
대만 동부를 여행하면서 가장 크게 느낀 건, 여행의 목적이 꼭 유명한 장소를 많이 보는 것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걷고, 멈추고, 바라보는 느린 여정 속에서 마음이 한층 더 가벼워졌습니다. 트레킹이나 자전거, 서핑, 패러글라이딩 같은 액티비티도 선택할 수 있지만, 단지 해변을 따라 천천히 걷는 일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웠습니다. 렌터카를 이용하면 주요 명소를 보다 자유롭게 둘러볼 수 있는데, 특히 해안 도로를 따라가는 길은 대만 동부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루트입니다. 길가에 불쑥 나타나는 작은 마을이나 뷰포인트는 여행 계획에 없던 보너스 같은 순간들을 안겨주곤 했습니다.
3. 총평 : 지금, 당신에게 필요한 여행은?
화려한 도시의 밤도 좋고, 유명한 음식도 매력적입니다. 하지만 때때로 우리는 그런 ‘많은 것들’보다, 단지 자연과 나란히 걷는 여행을 더 필요로 할 때가 있습니다. 대만 동부, 특히 화롄과 타이동은 그런 여행을 위한 완벽한 무대입니다. 일상의 속도를 잠시 내려놓고, 자연의 리듬에 맞춰 천천히 걸어보세요. 그 안에서 분명히 새로운 영감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여운은 여행이 끝난 뒤에도 오래도록 남게 될 겁니다.